시즌 3. 운명의 아이들 7. 암흑길드

오상준
2018-07-08
조회수 285

7. 암흑길드


# 에르시온 중앙신전 / 낮

거대한 신전의 중앙회랑으로 들어서는 로이. 좌우에 도열하고 있던 사제들이 로이에게 예를 갖춘다. 중앙회랑의 끝에 있는 계단을 올라 제단으로 향하는 로이. 제단 위에 기다리고 있던 최고신녀 린이 정중히 예를 갖춰 로이를 맞이한다. 엄숙한 신관의 제복이 무색할 정도로 눈부신 린의 미모, 린은 무표정에 가까운 표정으로 로이를 맞이한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전갈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로이

예정에 없는 요청으로 폐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빛의 사원에서 벌어진 일은 이미 전해 들었습니다.

 무고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한 일이라면 당연히 저희 신녀들이 도와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리로 오시지요.


무표정한 린의 안내를 받으며 로이는 고해의 방 쪽으로 향한다.


# 에르시온 중앙신전 고해의 방 / 낮

고해의 방으로 들어오는 로이와 린과 시종들.


너희들은 이만 물러가도 좋다.


린의 지시에 시종무녀들은 고개를 숙인 후 문을 닫고 방을 나간다.

방 안에 두 사람만 남겨지자 육중한 철문이 몇 겹이나 상하좌우로 내려와 문을 막는다.

그 순간, 앞으로 몸을 숙이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로이,

울컥 피를 토하며 앞으로 쓰러진다.

놀란 린이 황급히 다가와 로이를 부축한다.


로이…!!


로이를 부축하는 린의 얼굴에는 아까의 무표정에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픔이 가득 차있다.


Cut to.

옷을 벗고 제단 위에 누운 로이.

로이의 위에는 치유석이 공중에 떠 있고, 몇 가지의 마법진 같은 홀로그램이 겹쳐진 모양으로 공중에 나타나 있다.

로이의 몸은 생기 없이 파리하게 굳어 있다.

몸 곳곳에 검푸르게 나 있는 커다란 저승꽃들 같은 모양의 멍들….

로이의 안색은 마치 산송장과도 같이 창백하다.

린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공중에 띄워 놓은 치유석과 마법진을 이용해 로이에게 치유의식을 시전한다. 온 몸에 땀을 흘리며 전력을 다하는 린.

마침내 축척된 치유석의 기운이 모두 로이의 몸속으로 스며들고…

비로소 로이의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로이

으..윽..


의식이 끝나자 힘겹게 눈을 뜨는 로이…

곁에서 로이를 내려다보는 린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다.


괜찮으세요?


로이

(힙겹게 웃어 보이며)

미안하오….

내가 또 당신을 힘들게 만들고 말았군.


(고개를 저으며) 

아니에요.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은 로이, 당신인 걸요…

나라를 위해서 라고는 하나 이런 참혹한 굴레를 스스로 지고 계셔야 한다니.


로이의 손을 잡고 있는 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런 린의 얼굴을 매만지는 로이.


로이

어쩔 수 없지…이것이 황족으로서 내가 감당해야 할 운명인 것을….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에요.

‘신병기갑’은 주인의 생명을 대가로 움직이는 저주받은 마도병기…

치유석으로 당신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것도 이제 한계에 도달했어요.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결국…


로이

(슬픈 미소)

그대에게 몹쓸 비밀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나를 부디 용서하시오.

내 육신은 이제 그대와 함께 있는 이 순간에만 짧은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었소.

하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여인이 나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내 처지가 참으로 원망스럽구려.

미안하오, 린.

그리고 사랑하오.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에요.

저도 당신을 사랑해요…로이….


로이와 린은 애달픈 표정으로 포옹하며 서로 키스를 나눈다.


# 에르시온 중앙의회 대회의장 / 밤

에르시온 왕국의 중앙의회 대회의장에서 연맹의 모든 영주와 중앙의회의 의원들이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엘토나드를 비롯한 강경파들은 토벌의 의견을 드높이고 있다.


엘토나드

(단호하게)저 해적들은 불순분자들이오!

우리의 체제를 어지럽히는 것도 모자라 우리의 땅까지 내놓으라니!

저런 자들과 어찌 타협하라는 말입니까?


강경파1

맞습니다.

만약 저 따위 해적들과 타협하게 된다면, 속국인 가이아는 물론이고 카일럼마저

우릴 얕보게 될 겁니다.


강경파2

(동의)그 말이 맞습니다!

(크산을 보면서)기회를 봐서 해적들을 쳐버립시다!


크산

흠…여러분들의 심정은 이해합니다.

허나 조금만 냉정히 생각해 봅시다.

과연 일개 해적의 무리가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단독으로 벌일 수 있다고

보십니까?


대신들

…!


크산

틀림없이 더 큰 배후가 있을 것입니다.

‘로스트’라는 저 해적 하나를 처치한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란 얘기에요.


대신들

….


크산

그러니 일단은 기다려 봅시다.


인질들 중엔 여러분들과 관계있는 자들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무엇보다 태자 전하가 직접 사전 교섭에 나서겠다고 요청한 만큼 기회를 드려야 하지 않겠소이까?


대신들

(진정되는 분위기)

의장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반면, 크산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생각한다.


크산

‘알 수가 없군. 실패할 게 뻔한 교섭에 스스로 뛰어들다니….

무슨 생각인진 모르겠다만 이번 일은 도리어 자신의 무능함을 영주들에게 알리는

꼴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로이 황태자!’


크산은 속내를 감춘 표정으로 시종장에게 물어 본다.


크산

태자 전하께선 벌써 출발하셨느냐?


시종장

그게…잠깐 중앙신전에 들르시느라 아직 출발은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크산

(눈이 가늘어지면서 살짝 번뜩인다)…중앙신전?


시종장

예, 사안의 경중을 생각하여 미리 신병기갑의 재조정을 하시겠다고….


크산

….


뭔가 납득이 안 되는 표정을 짓지만 이내 그 표정을 감추는 크산.


# 크산의 집, 서재 / 밤

자신의 집에 돌아온 크산. 크산은 불이 꺼진 서재로 들어와 나지막이 누군가를 부른다.


크산

거기 있느냐….


그 말과 함께 한 소녀가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나타난다.

검은 색의 옷을 두르고 짧게 자른 머리에 무표정한 얼굴이 마치 비스크 돌처럼 무생물적인 느낌을 주는 소녀다.


크산

로이 황태자가 빛의 사원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예정에도 없이 중앙신전에

들렀다고 한다.

아무래도 걸리니 그 점에 대해서 조사를 좀 해줘야겠다.


소녀

….


소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소녀가 사라지자 크산은 미소를 짓는다.


크산

흠.. 생각보다 쓸모는 많은 것 같군.

내 사람이 아니라는 게 아쉽긴 하지만..


# 리바이던 호, 로스트의 방 / 아침

로스트의 방에 중앙에 놓인 탁자에는 음식과 함께 술병이 잔뜩 널려 있다.

그리고 테이블의 양쪽에는 로스트와 스티븐스가 앉아있다.

둘은 밤새도록 술을 마신 모양이다.

로스트는 꽤 거나하게 취한 상태이고 스티븐스는 딱히 취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로스트

사형이랑 이렇게 밤새도록 술을 마셔보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스티븐슨

그러고 보니 그렇군.

스승님이 돌아가신 날 이후론 처음인가.


로스트

그 때 스승님은 사형사제 간에는 싸우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했는데, 사형이

나한테 대포를 냅다 쏴댈 줄이야.

스승님이 보시면 기겁하셨을 거요.


스티븐슨

자네가 피할 것쯤은 예상하고 쏜 거야.


로스트

흐흐흐.


로스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잔에 남은 술을 마저 비운다.


로스트

그래… 결국 사형은 로이, 그 녀석을 따르기로 한 거요?

그 능력에 맞지 않게 집사 노릇까지 하면서…?


스티븐슨

이왕이면 희망을 건 거라 해 주게.

난 그 분에게서… 이 신지구에 평화를 가져다 줄 왕의 자질을 보았다네.

난 그 분이 진정한 성군이 될 수 있도록 보필할 생각이야.


로스트

…쳇.

여전히 말은 번드르 하지.

그래, 인정은 합니다.


로이

그 놈, 대단한 놈이긴 해요.

분명 좋은 왕이 될 거요.


스티븐슨

그렇다면 자네도 나랑 같이….


로스트

(고개를 젓는다)

싫습니다!

난 더 이상 왕이란 존재는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로스트의 표정은 어느 새 취기를 깬 듯 눈빛이 번뜩인다.


로스트

이 난세를 해결할 자는 왕이 아니라 영웅입니다!

로이 그 놈은 훌륭한 왕이 될지는 몰라도 영웅이 될 인물은 아닙니다.

전~혀!

재미가 없다고요…!


스티븐슨

그럼 자네가 말하는 그 영웅이란 인물은 찾긴 한 건가.


로스트

글쎄요..


로스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미묘한 표정으로 다시 술잔에 술을 채우고 들이킨다.

그러면서 로스트는 속으로 생각한다.


로스트

‘그러고 보니 재미있는 녀석은 하나 만나긴 했지.

무사히 살아 남았으려나 모르겠군, 그 녀석.’


#. “아수라”의 조종실 / 밤

“아수라”의 조종 크리스탈과 마주선 크롬.

크롬

(심각한 표정) 네가 움직여줘야 겠어.


아수라

“빛의 사원”을 커버하려면 로도스 전선의 절반,

카일럼의 후방 일부가 열릴 겁니다.

괜찮겠습까?


크롬

어쩔 수 없어. 레나가 그곳에 있다면..

그 아이는 나의 모든 것이다.


아수라

레나.

아수라의 계약자.

 크롬의 딸…

숨을 거둔 불쌍한 왕비의 딸.

나의 친구.


크롬

부탁해도 되겠나?


아수라

물론입니다.

 당신은 아수라의 계약자가 힘을 맡긴 사람이니까요.


크롬

전투를 치른 후라 힘들 테지만, 미안하다.


아수라

아닙니다.

저는 계약자를 위해 존재하니까. 괜찮습니다.

하지만 목표좌표에 도달하기까지는 앞으로 일주일.

그때까지는 당신의 몫입니다.


크롬

그렇군… 일주일이라…


이때 벽면에 형성되는 입체영상.

다급한 표정의 신하.


크롬

무슨 일이냐?


신하

(주저) 저… 그것이…


크롬

(버럭)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느냐!


신하

(황급히) 에르시온의 태자 로이가 지금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하옵니다.

아무런 사전협의가 없었는데… 무조건 폐하를 뵙겠다고…

일방적으로 통고를 해 왔습니다.


크롬

(두 눈에 이채를 발하며) 정말인가?


아수라

오고 있다. 한대의 비행선. 에르시온으로부터.

곧 나의 범위 안에 들어 온다.

적인가? 제거하길 원하나? 아니면 손님으로 맞이할 것인가?


크롬

(곰곰히 생각하다가 미소) 일단 손님으로 맞이한다.

적이라고 판단되면… 돌려보내지 않으면 되니까…


아수라

일단은 손님. 맞이한다.


크롬

흠… 드디어 에르시온의 “젊은 수호자”를 만나게 되는 건가…

기대가 되는군. 하하하.


손짓을 하자 조종 크리스탈이 빛을 발하고,

크롬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 에르시온 왕국, 크산의 집무실 / 밤

어두운 실내. 희미한 조명 아래 앉아 있는 크산.

맞은 편 어둠 속으로 로브를 뒤집어 쓴 사내가 서 있다.

“암흑길드”의 수장 흑마. 정체를 알 수 없는 스산한 느낌의 음모가.


크산

(싸늘한 미소) 우리의 로이 황태자께서 드디어 움직이셨다는군…


흑마

(웅웅 울리는 목소리) 그렇다면 우리도 움직일 때가 된 것이겠군.

멋진 볼거리를 선사해주지. 뒤틀린 야심가 친구…


크산

(인상을 구기며) 뒤틀린 야심가라…

아니지. 나는 다만 원래 내 것이었던 것을 되찾아 오고 싶을 뿐이야.


흑막

여전히 현재의 황제가 선대 황제인 네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믿는 건가?


크산

그는 고립된 선황제의 군대를 의도적으로 혼전 속에 방치했어.

내 아버지의 권좌를 노리고…


흑마

후후후. 재미 있는 해석이군… 아무렴 어떤가?

우린 우리 몫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야.


크산

(심각) 차질 없이 만전을 기해야 해.

일을 그르쳤다간 모두가 끝이야.

두 번째 기회 따위는 없다구.


흑마

(마른 웃음) 크흐흐. 건방진 놈.

그 따위 걱정은 접어두고 어떻게 약속을 지킬지나 궁리하라고.

우리 사전에 실패 같은 것은 없으니까…

물론 배신이라는 것도 용납하지 않지…


크산

후후후. 이 손으로 계약서라도 써 주길 원하나?


흑마

그 따위 것은 필요 없어.

약속을 하는 것은 너지만 지키게 하는 것은 우리니까.

지키게 할 수 없는 약속이라면 애초에 받아내질 않았겠지. 흐흐흐.


크산

(뒤틀린 웃음) 크하하. 재미있는 표현이군…

좋아 “암흑길드”의 힘을 믿어 보지.


흑마

크흐흐흐…


크산

아무튼 이제 너희들의 생존과 나의 웅대한 꿈은 한 배를 탄 운명이다.


흑마

그렇군. 크흐흐…


흑마가 사라지자 혼자말로 중얼거리는 크산

크산

‘긴 우주방랑기에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실험의 재료로 삼은 미치광이 인간들의 후예들..

가공할 초능력자들, 하지만 저주받은 운명으로 소수의 생존자들만 남은 멸종위기의 돌연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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