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 잃어버린 낙원 (Paradise Lost) 6. 영접 (Greet)

오상준
2017-12-06
조회수 465

6. 영접 (Greet)


율리시스 웰은 아케론호 의무실 침대 위에 앉아 의무관의 검사결과를 걱정스럽게 듣고 있었다. 하지만 큰 위험속에서 살아남은 사람 치고는 꽤 건강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의무관

검사결과 이상 없습니다.


피터 가빈

다행입니다.

율리시스 웰 선장님.


율리시스 웰

선장이라뇨...부끄럽습니다...

저는 함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피터 가빈

그것이 어떻게 선장님만의 책임이겠습니까...

지구를 떠나 올 때 제대로 준비된 방주가 과연 있기나 했을까요?

하지만 선장님이 이끄신 네브카드호의 선원과 승무원들은 살아있지 않습니까.


율리시스 웰

지구에서 달까지 되는 거리를 단숨에 와주신 선장님 덕분입니다.

선장님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모두 죽었을 겁니다.


피터 가빈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인데요.


창 밖의 방주들을 근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피터 가빈에게 데런 커쇼가 다소 상기된 얼굴로 달려온다.


데런 커쇼

선장님! 공기를 지원하겠다고 한 방주들이 있습니다!


피터 가빈

오. 오.. 그런가?

다행이군.

어떤 방주지?


데런 커쇼

노아라는 함선입니다.


피터 가빈

노아에게 도킹을 허락해 달라고 해주게.

그리고 최후 교신에 썼던 채널를 개방해 주게.


데런 커쇼

네!


피터 가빈

이 수신을 듣는 모든 인류의 방주에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아 남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각각의 방주의 자원은 부족하지만 함께 모아 봅시다.

우리의 선조들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율리시스 웰은 비록 작지만 깔끔한 숙소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침대에 피곤한 몸을 묶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율리시스 웰

'오늘.. 죽지는 않았네.. 하지만 내일은..

우리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았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아케론호의 아침, 피터 가빈 선장은 숙소에서 둥둥 떠 다니는 걸 막기 위해 몸을 묶은채 자고 있었다. 어제 큰일이 있어 좀더 피곤한 듯 잠에서 깨지 못했지만 딸 도로시와 새소리에 눈을 떴다.


새소리

짹 짹 짹


도로시

와~ 새가 탔어.


피터 가빈

그러네. 이리 오렴 우리딸.

아~ 흠, 따듯한 욕실과 포근한 침대가 벌써 그립군.


이른 아침이지만 율리시스 웰은 아케론호 주 조정실에 먼저 도착해서 피터 가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터 가빈

피곤할텐데 좀더 쉬시지 아침 일찍부터 왠일이세요?


율리시스 웰

선장님, 절 항해사로 받아주십시요.


피터 가빈

듣던중 반가운 소리네요.

좋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유능한 항해사가 많이 필요했는데.


율리시스 웰

감사합니다.

궁금한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피터 가빈

얼마든지요.


율리시스 웰

앞으로 우리가 마실 공기는 얼마나 남았나요?

물과 식량은?

연료는?

 그리고 중력이 없는 이곳에서 얼마나 약해지지 않고 견딜수 있을까요?


피터 가빈

아아.. 웰 진정해요.

그냥 지구가 했던 걸 생각해 보세요.

지구는 식물과 동물이 서로에게 필요한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공급하잖아요.

우리도 중력과 땅을 만드는 거에요.


율리시스 웰

하지만 지구의 그 무거운 흙을 일부러 가져온 우주선이 있을까요?


피터 가빈

지구도 우주의 일원이에요.

흙은 소행성에서 채취해 봅시다.


데런 커쇼

있습니다! 지구의 흙을 가져온 방주가.


피터 가빈

어딘가?


데런 커쇼

어제 공기를 지원하겠다고 했던 노아라는 함선입니다.

정확히 말해 ‘흙’은 아니지만 식물을 기를 수 있는 것을 가져 왔답니다.

그리고 여러 동식물들의 씨앗도요.


피터 가빈

흠.. 그런 거였군요.

혹시, 노아호에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타고 있나요?


무선

치.직.. 함선 노아입니다.

저희 함선에는 저명한 생물학자인 요한 오로바스 박사님이 타고 있습니다.


노아호와 아케론호가 도킹을 해서 가빈 선장과 율리시스가 오로바스 박사가 만든 재배장과 동물 수정란들을 둘러보며 신기해 하고 있다.


율리시스 웰

대단한 선견지명이십니다. 오로바스 박사님.

흙을 대신할 수 있는 블럭을 실고 오실 줄이야..


요한 오로바스

그 정도로 감탄하기에는 이르네.. 후후후


율리시스 웰

?


요한 오로바스

우주는 지구랑 너무 달라.

미생물도 존재하지 않지, 방사능도 있고 말야.

그래서 난 내 신체를 처리했네.

새로운 환경에 맞게, 세포 수준에서.


율리시스 웰

신체 처리.. 요?


요한 오로바스

지구에는 우주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생물들이 있다네.

완보동물 같은..

이들은 지구의 어디에도 있지만 다섯번의 집단 멸종에서도 살아남았지.


율리시스 웰

어떻게 지구에 있지만 방사능과 진공을 견딜수 있었죠?


요한 오로바스

우리가 상상도 못한 오랜 세월 다양한 경험을 했던 생명의 힘이지!

우리가 우주로 나왔다가 지구로 돌아갈, 첫번째 생명체가 아닐수도 있네.


율리시스 웰

아!


오로바스 박사는 자랑스러운듯 작은 약병을 들어보였다.


요한 오로바스

그들에게 한 수 배워 왔지!

‘파르’ 라는 것이네.


율리시스 웰

파. 르..?

그럼.. 인간이 공기 없이도, 방사능도 견딜수 있나요?


요한 오로바스

공기가 하나도 없인 견딜 수 없지만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오래 견딜 수 있다네.

그리고 세포들이 방사능에 강한 보호막을 만들었다고 보면 되는걸세.

진화가 했던 것을 인간이 받아들인 것이지.


율리시스 웰

건강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오로바스 박사가 셔츠를 일부 벗자 어깨와 팔 등쪽에 고대 종족의 문양같은 문신을 일부러 새긴것처럼 보였다.


요한 오로바스

확신하기는 많이 이르지만.

아직까지는..

우린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여기, 우주에서 살아가야 하네.


피터 가빈

이제 우리도 우주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희망이 드네요.

인공생태계와 중력으로 최대한 지구와 비슷한 환경!

그리고 우주에서도 견딜 수 있는 인간!


그들은 최후교신 채널에서 함께 생존하기를 원하는 함선을 개조해서 회전할때 생기는 인공 중력을 이용해 넓은 공간을 들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가축들을 인공부화시켜 풀어놓고 밭을 만들어 씨를 뿌렸으며, 온도를 맞추고 인공 강우를 만들어 냈다.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보완하며 작은 세계를 완성해 나갔다. 그곳에 작은 지구를 창조한 것이다. 

그렇게 세상이 만들어지자 사람들은 이 세계에 가이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들이 만든 인공적이 자연이 아닌, 진짜 대지를 염원하는 뜻에서. 가이아는 그들이 만들어낸 시스템 중 가장 정교한 것이었다. 모두의 생존을 위해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파고든 끝에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작은 세상은 지구의 환경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럭저럭 살만했던 것은 사실이다. 마치 집 뒷마당에 텃밭을 만드는데는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경이로움과 놀라움은 결코 재현할 수 없었다.



한편, 중국과 몇몇 나라들이 중심이 되서 탈출에 성공한 방주 ‘천궁’의 우주 생존 위원회의 위원들은 우주선에 탄 시민들을 새로 정착할 식민 행성으로 가는 중이라고 안심시켰지만 실상은 그들 또한 앞날을 기대 못하는 판국이었다. 미리 준비했던 수 많은 매뉴얼은 무용지물이었고 주변에 도움을 받을 다른 선단도 없었다. 희망을 잃어버린 시민들은 점점 불만이 고조되었고, 위원들은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 삶을 끝낼 채비까지 했다. 그들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자살을 생각하면서 권총을 사용할지 독약 캡슐을 입에 물지 의논하던 차에 괴이한 소식이 전해졌다. 승무원들이 레이더를 통해 매우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존재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천궁의 주 조정실에서 항해사가 위원장에게 모니터에 보고 위급한듯 큰 소리로 말했다.


항해사

떠돌이 행성입니다!


위원장

떠돌이 행성이라니?


항해사

우주의 어둠속을 돌아다니는 행성입니다.

항성계에 끼지 못한 행성이 이리저리 궤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것을 말합니다.


위원장

위험한가?


과학자

그럴수도 아닐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얼음이 존재할 수도 있고.. 아직은 뭐라..


항해사

하지만 좀 이상합니다.

적외선 카메라로 전환!


과학자

마치 비행을 하는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위원장

다가오다니, 그럼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나?


항해사

 아닙니다.

오히려 속도가 점점 더 느려지고 있어요!


궁지에 몰려 있던 위원들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정체불명의 존재에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권위 강화를 위해 그것으로 다가서는 선택을 감행한다. 긴장된 와중에 정체불명의 물체가 있는 곳으로 선단은 도착했다. 위원회 위원들, 과학자들, 무장요원들이 소형 우주선에 탑승해서 탐사를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소행성처럼 보였던 표면은 매우 매끈한 거울처럼 보였고 어디에도 이음새나 창문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갈 출입구 또한 전혀 보이지 않았다. 소행성의 입구를 찾는데 실패한 소형 우주선은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힘이 소형 우주선을 끌어 당겼다. 순간 공포가 소형 우주선 내부에 감돌았고 그들이 얼어붙은 사이 소행성의 표면이 마치 물결처럼 일렁이더니 마치 물을 통과하듯 소형 우주선을 내부로 끌어들였다.

천궁의 탐사선에 탄 사람들은 루흐다의 소행성 내부 광장에 있는 커다란 둥근 원형 기둥에 써있는 비문을 읽고 있었다.


위원장

뭐라고 쓰여 있는 것 같소.


비문

미지의 이웃들에게,

우리의 우주선을 발견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우리는 카일러미아 행성의 루흐다인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 유산의 ‘견본’들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여러분들에게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낙원에서 우리의 유산을 함께 나눌 새로운 친구를 찾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이들은 여러분처럼 현명하신 지적인 생명체들뿐입니다.

지금부터 기술하는 방법대로 한다면 우리들의 이기를 완전히 통제해 카일러미아로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곳에 와서 우리를 도와준다면 우리는 여러분에게 지금까지 본 것보다 더욱 위대한 유산들을 나누어 줄 용의가 있습니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 쓰여진 내용에 너무 놀란 나머지, 어느 누구도 침묵을 깰 수 없었다. 기둥에 양각된 비문은 소행성의 목적과 소행성을 작동시키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한 매뉴얼이었다. 내용은 간단했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비문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오려면 일단 ‘선정’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다른 이들과 싸워 살아남고 여러분의 강인함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유감스럽지만 여러분의 생존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남는다면 큰 보상을 얻을 것입니다.


위원들은 기둥의 존재와 비문의 내용을 사람들에게 철저히 비밀로 하고 고민에 빠졌다. 유혹이 강렬하기는 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위험에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소행성의 강력한 위력을 드러내는 결정적 사건이 생겼다. 거대한 암석 파편 하나가  소행성을 향해 돌진해 왔고, 소행성은 잠시 모든 기둥이 작동하는 상태로 전환되면서 작동했다. 눈 깜짝할 사이, 소행성은 강력한 광선을 발사하며 암석 파편을 증발시켜 버렸다. 그것은 그들이 갈구했던 권력, 그 자체였다. 결국 위원회는 그 힘을 취하기로 결심했다.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과학자들은 소행성을 작동시키는 방법을 찾는 연구가 승인되었다. 기둥에 자리잡은 소행성의 중심 구역에 대한 세밀한 조사가 벌어졌다. 연구원들은 어느 저장소에서 비문에서 언급한 루흐다의 형질이 든 앰플과 매뉴얼을 찾아냈다. 매뉴얼에 따르면 이것이 루흐다의 후예가 되는 첫번째 길로, 이 형질을 얻은 이만이 소행성의 모든 루흐다인의 이기를 작동시킬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앰플의 성분을 분석했고, 그것이 지금껏 존재하지 않는 구조지만 바이러스와 같은 원리로 어느 개체에 특정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유전자 물질임을 확인했다. 

이때부터 위원회는 탐욕에 눈이 멀었다. 그들은 ‘인류 진화 계획’ 이라 이름 붙인 생체 실험을 진행했다. 선단에는 엘리트 시민들 뿐 아니라 노동력을 제공할 목적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수만명정도 있었고 이들이 바로 실험 대상이 되었다. 우주에서 인간의 신체 적응력 개선을 위한 실험을 한다는 명목으로 실험자들이 모집 되었다. 식량 보급과 각종 혜택이 그 대가였다. 도중에 일부 과학자들과 위원들이 양심의 문제를 들고 반발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주류파가 장악한 위원회는 단호히 그들을 숙청했다. 지금은 공포가 필요한 시기였다. 과학자들은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죽음을 선택해야 했다. 위원회는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계획을 밀어 붙이면서 스스로를 합리화 했다.


위원1

‘역사상 새로운 진보를 받아들일 때는 항상 희생이 필요했다.

인류가 살아남아 번영을 누릴때,

 지금 우리의 결정은 <인류를 위한 결단>으로 평가 받을 것이다.’


위원장

아니. 아니에요.

변명 같잖아.


위원1

그럼.. 어떻게..


위원장

이렇게 해야지요.


위원1.

?


위원장

이것은 바로 인류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세계.

불멸!

그 이룰 수 없었던 꿈을 이루어 줄 중대한 결정이다.


위원들

오.. 오..


위원장

우리는 영원 불멸의 육신을 이룩하여,

진정한 우주의 지배자가 되리.

우리의 의지가 세상의 운명이 될 것이다!


위원회는 루흐다인의 유전자를 주입 받은 사람들이 무사할 거라 여기진 않았다. 초기에는 치사율이 100% 였다. 몇몇 과학자들이 그 껄끄럽지 못한 결과에 우려를 표했지만 위원회는 새로운 실험체를 뽑아 ‘인류 진화 계획’을 계속 진행시켰다. 계속된 심험에도 실험체들이 전부 형질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이 희생으로 데이터가 수집된 덕분에 실험에 적합한 대상들이 선별되었다. 바로 여성들이었다. 실험군이 좁혀지자 마침내 성과가 나타났다. 치사율은 70%로 줄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신체적 변화가 조금씩 일어났다. 눈동자 색이 변하고 피부가 창백해지는 것이 공통적인 증상이었다. 

위원회는 그렇게 루흐다의 형질을 이식 받은 이들을 모아서 루흐다의 이기를 움직이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들은 거의 모두가 소행성 내에 있는 루흐다의 이기들을 작동시킬 수 있었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전진이었지만 소행성의 메인 컨트롤 기둥을 통제하는데는 매번 실패했다. 위원회는 소행성 전체를 원했다. 매뉴얼에 따르면 강인한 자만이 기둥과 교감하여 소행성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즉 루흐다의 형질을 더욱 강력히 전수 받은 실험체가 필요했다. 계속된 실험을 통해 어머니의 자궁에 있는 태아들이 적합한 실험체로 분류되었고 치사율은 40%로 줄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많은 루흐다의 앰플을 사용해버려 더는 같은 실험을 하기 곤란했다. 

위원회는 실험에서 살아남아 태어난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자아를 갖출만큼 자라자 기둥으로 보냈다. 한 여자 아이 차례였다. 피부가 완전히 하얘지고 눈동자가 한쪽은 푸른색 한쪽은 노란색으로 변한 아이가 벌벌 떨면서 기둥으로 나왔다. 과학자는 그 아이한테서 어딘가 특별한 점을 느꼈다. 지금껏 그가 보아온 루흐다 형질 실험체 중 가장 형질이 강하게 발현되고 있는 아이였다.  과학자의 등뒤에서 위원장이 시작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과학자

기둥속으로 손을 집어 넣어.


과학자가 말했다. 아이가 잔뜩 겁에 질려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기둥에서 푸른 빛이 감돌았다. 나머지 실험체를 포함한 보안 요원들이 눈을 가렸다. 은은한 빛만 가득하던 소행성의 내부에 강렬한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모두들 그 불빛을 마지막으로 봤던 때를 기억했다. 다가오는 암석을 소행성이 자동적으로 파괴했을때 들어왔던 그 불빛이었다. 반투명한 기둥속에 손을 집어넣은 소녀에게서 붉은 빛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열쇠가 들어간 것처럼 소녀의 손만 기둥에 들어가 있고 소녀의 몸이 공중에 붕 떠 있었다.


소녀

뭔가 저한테 말을 걸었어요.


과학자

뭐라 그랬지?


소녀

당신이 나의 계약자냐고 물었어요.


과학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속에 서있는 위원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더니 그 중 한명이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학자

그렇다고 대답하렴.

과학자의 말에 소녀가 정신을 집중했다. 그녀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소녀

자기 이름을 정해 달래요.


과학자는 다시금 뒤를 돌아 보았다. 어둠속에 있던 위원들이 다가왔다. 그중 한명이 흡족해 하면서 말했다.


위원장

‘아수라’ 밖에 없을 것 같군!

그렇지 않나?


순간 과학자는 직감했다. 앞으로 이 소녀가 저들의 탐욕을 지켜줄 거란 걸. 하지만 과학자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의 후예 중 하나가 태어날 아이 중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살려야 한다는 룰을 어긴 최초의 사람이었다. 계약자가 선택된 후 위원회는 선단에 있던 고위층과 중요한 요인들을 아수라로 이주 시켰다. ‘구원’ 이라는 명목으로. 위원회는 우호적인 시민들에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팔아 부를 최대한 축척하며 아수라에 탑승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을 탑승시켰다. 나머지 시민들은 선단에서 그대로 생활토록 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남겨두고 아레나 행성으로 떠나 버렸다. 낙원 ‘카일러미아’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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