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 잃어버린 낙원 (Paradise Lost) 8. 탈출 (Exodus)

오상준
2017-12-06
조회수 417

8. 탈출 (Exodus)


엑소더스 선단이 구조한 수십만 난민들에게 거대기업들은 플랜트 사용료를 인원 수대로 청구했다. 이미 지구 시절 국가들이 무너졌으므로 초기 난민들이 사용료를 낼 수단은 금이나 은 귀금속 같은 현물 뿐이었다. 사용료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일부 부자 난민들은 사용료를 간단히 지불해 거대 기업을 지배하는 엘리트들의 호와롭고 부유한 사회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난민들은 기업들이 제시한 사용료를 낼 여력이 없었다. 이에 LOPE는 그들에게 돈을 대출해 주면서 선단내에서 은행 노릇을 했다. 기업과 난민들은 LOPE가 발행한 전자화폐, ED(엑소더스 달러)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각 기업들이 그 돈을 받고 비축한 생필품들을 팔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플랜트 내에는 난민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 형성 되었다.

 이는 언뜻 난민들을 위해 호의를 베푼 것 같았다. 그러나 실상은 잔인했다. 난민들은 처음에는 LOPE가 지원해준 대출금을 토대로 플랜트 사용료를 내고 남은 돈으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그러나 LOPE가 빚 독촉을 시작하면서 난민들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LOPE는 무장한 사병조직을 동원하여 빚을 같지 못하는 난민들을 구금했고 시민들은 기업들이 제공하는 일자리로 돈을 벌어 LOPE한테 진 빚을 꾸준히 갚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업들이 플랜트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최소 인원들로 플랜트를 가동해 왔지만 플랜트의 생산시설들은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다. 기업들은 난민들을 플랜트 내 기업 소유의 생산시설들을 작동시키는데 활용했고 그들이 생산한 물건들로 시장을 유지했다. 기업들은 보다 많은 우주선을 소유하는 것이 지구에서 많은 땅을 소유하는 것과 같이 부의 원천으로 받아 들이게 되었다. 때문에 많은 난민들이 거대기업들의 우주선 건조 작업에 투입되었고 노동 강도가 높고 위험했다. 대신 많은 임금을 지불하였으므로 난민들은 생계를 위해 목숨을 불사했다.

 난민들은 아무리 일을 해도 LOPE의 대출금 이자를 간신히 갚을 수준의 돈밖에 벌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난민들은 이를 ‘노예대출’이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기업들이 채운 족쇄로 받아 들였다. 결국 불만이 폭발한 난민 노동자들이 플랜트의 거주구역에서 한 차례 폭동을 일으켰다. 거대 기업의 사병들은 치안을 명분으로 이를 강제로 진압했다. 이를 빌미로 기업들은 LOPE의 주도하에 당근과 채찍작전을 구사했다. 채찍은 강력한 치안규칙으로 기업의 사병들에게 난민들을 구금하고 통신장비를 도청할 수 있는 규칙을 이사회에서 통과시켰다. 당근은 바로 미디어 산업의 육성이었다. 거대 기업들중에는 과거 지구에서 미디어를 주름잡았던 회사들도 있었다. 그 회사들은 다른 거대기업들의 지원하에 선단내에 뉴스 방송국을 만들어 난민들을 위한 오락방송을 내보냈다. 이 방송국의 목적은 쾌락을 추구하는 자극적인 프로그램들과 희망에 가득찬 뉴스만 제공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저항하던 난민들조차 이에 빠져들면서 저항은 점차 사그라 들었다.

 버튼 박사와 발모어 회장은 이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이사회라는 창구로 거대기업들의 횡포를 막으려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그들을 제외한 기업들은 LOPE의 로트필드 남작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버튼은 몇번이고 그를 찾아가 노예대출의 독촉을 중단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도록 설득했지만 남작은 매번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능글맞게 넘어갈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버튼은 좌절하여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고 싶었다. 무력 투쟁이라도 불사하고 싶었다.

 그러나 발모어 회장은 때를 기다리자고 만류했다. 무력을 이용해 거대 기업들을 상대로 투쟁한다면 플랜트의 심각한 손상이 불가피했다. 그들에게 생존을 유지할 수단은 오직 플랜트 뿐. 플랜트가 파괴되면 남은 것은 멸망뿐이라는 걸 버튼 박사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발모어 회장의 조언을 버튼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몇년 동안, 버튼은 플랜트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노예로 전락한 난민들의 생활을 둘러보았다. 그가 가진 해박한 지식으로 열악한 주거공간을 개선해 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 나갔지만 거대기업의 횡포는 그조차도 막을 수 없었고, 버튼은 점점 절망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악순환을 방관하고 있다는 최책감에 무기력해져 있는 버튼에게 어느날 발모어 회장이 연락을 취해왔다. 회장은 계획을 하나 내 놓았다.

발모어 회장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피터 발모어

바로 저들의 룰을 이용해 이기는 걸세.


로버트 버튼

룰이라구요?


피터 발모어

이사회 말일쎄.


발모어 회장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피터 발모어

난 아직도 이사회 의장일세.

왜 그들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려 하는 걸까?

바로 로트필드 남작의 판단이지.

내가 사람들에게 플랜트의 창시자로 존경 받는걸 아니까.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는거야.

의장의 권한은 안건을 직권 상정하는 것일 분, 저들의 지분이 과반수인 이상 별 힘을 못 쓰니까, 

그럼 저들이 하는 짓을 멈추려면 어떡해야 할까?


로버트 버튼

이사회에서 우리가 과반수를 차지하면 되겠지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


피터 발모어

그것을 실현시켜줄 사람들이 있네.


발모어 회장이 개인용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엑소더스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통신기기였다. 발모어는 그걸 조작하여 어떤 영상을 틀어 놓았다. 그것은 플랜트의 곡물 생산시설에서 벌어진 어느 시위를 몰래 캠코더로 녹화한 것이었다. 그 시위의 플랭카드에는 바이오트론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어고, 몰래 촬영된 영상의 오른쪽 모서리에는 해골 마크가 선명했다. 그것은 기업들에게 대항하는 어느 해적 방송국의 방송이 틀림없었다.


로버트 버튼

아마 파이럿츠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


피터 발모어

자네가 저들을 우리편으로 만들어 주게.


바이오트론은 발모어 회장 소유인 베데스다의 식량생산 플랜트에서 식량을 생산하던 노동자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이었다. 발모어 회장은 베데스다가 고용한 노동자만큼은 인도적인 대우를 해주었고 월급을 많이 지불하여 노예대출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주었다. 그 덕에 이곳 노동자들은 다른 이들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발모어 회장은 뒤에서 은밀히 이들을 지원해 왔다.

 베데스다의 바이오트론을 본따 다른 회사 노동자들도 바이오트론이란 이름의 조합을 결성했는데 발모어 회장조차도 이렇게 빨리 바이오트론 조직이 퍼질 줄은 몰랐다. 개인 통신장비를 기반으로 한 파이럿츠라는 해적방송이 원인이었다. 이 해적방송이 바이오트론의 활동과 존재를 플랜트 내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퍼트렸고 우후죽순 다른 노동자들도 용기를 얻고 바이오트론을 만들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베데스다의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을 누리는 이유가 바이오트론 덕분이라고 믿고 있었다. 

 예리한 눈을 가진 전략가답게 발모어 회장은 기업들이 바이오트론의 존재에 당황하여 이에 대한 대책을 미처 세우지 못했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리하여 과감한 기습작전을 세우기로 한 것이었다. 기업들이 미처 대처하기 전에 바이오트론을 하나로 통일하고, 이들이 자본을 모으게 한 다음 합법적으로 이사회에 지분을 갖고 진출을 하도록 해서 이들과 함께 과반을 차지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거대기업들이 그간 이용해 왔던 이사회라는 지배 시스템을 역이용하여 거대기업들의 허를 찌를 방법이었다.

 버튼은 다른 기업들이 바이오트론의 진출을 받아들일지 의문을 품었고, 바로 이 부분에서 발모어 회장은 버튼에게 중요한 지시를 내렸다. 바이오트론을 통합하는 과정에 그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이오트론을 모두 통합하고 나면 그 통합된 세력을 이사회로 진출시키는데 버튼이 갖고 있는 에덴 랩을 활용해야만 했다. 에덴 랩은 비록 그 규모가 작지만 이사회의 지분을 가진 엄연한 기업이었고 기존의 이사회에 진출한 기업이 바이오트론과 합병한다면 다른 기업들도 막을 명분이 없었다.

발모어 회장은 설명하는 내내 마치 젊은 사람 같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정이 살아 숨쉬었다.


피터 발모어

그렇게 되면 이사회에는 제3의 세력이 등장하는 거야.

노동자들 또한 자본을 가지고 있으니 바이오트론의 조직력을 동원해 자본을 모으면 우리는 지분을 얻을 수 있겠지.

단 1%만의 지분이라도 새로 확보한다면...


로버트 버튼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겠지요.


피터 발모어

자네가 그걸 해줘야겠네.

그동안 난민들과 함께 있었으니까 자네가 적격이야.

자신 있겠나?


버튼은 의욕이 끓어 올랐다.


로버트 버튼

물론입니다. 로트필드에게 한방 먹일 수만 있다면,

이 잘못된 일을 바로 잡을 수만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 놓을 겁니다.


피터 발모어

그거면 됐네.


발모어 회장은 숨을 몰아 쉬었다. 그가 가슴을 잡았다. 감정이 격해진 듯 했으나 자기가 쓰고 있던 냉정한 기업가적 페르소나를 벗어 던지고 자신이 믿는 신념만 표출하기 시작한 그런 모습이었다. 바로 죄책감, 버튼이 지닌 것과 같은 마음이었다. 우리가 만든 이 세계를 처음 구상했던 늙은 회장이 말했다.


피터 발모어

일을 이렇게 만든데는 나한테도 책임이 있네.

우리는 꿈을 꿨지만 부득이하게 악몽이 되었지.

전부터 내내 자네한테 사과하고 싶었네.


로버트 버튼

아닙니다. 피터.

나 또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 세계를 만든 건 납니다.

당신하고 함께요.


버튼은 발모어의 어깨를 토닥였다. 갑자기 이 노인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로버트 버튼

‘그간 발모어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졌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는 내가 그 짐을 맡아야 한다.

드디어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시간이 왔다.’


버튼 박사는 신중을 기해 바이오트론 지도자들과 접촉했다. 그 지도자들은 거대기업들을 혐오했지만 발모어 회장을 비롯해 버튼 박사에게는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플랜트의 창시자중 하나로서 버튼 박사는 바이오트론 조합원들을 하나로 규합하는 역할을 하는데 적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각 바이오트론 조합의 이해관계를 맞추는 것은 인내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해결할 수 있는 어려운 과제였다. 거기다 바이오트론이 노동자들의 돈을 한푼씩 모아 모금한 자본금을 LOPE 몰래 하나로 합치는 과정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위험한 작업이었다. LOPE가 눈치를 챘다가는 모든일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버튼은 발모어 회장에게 전술을 배워 하나 둘 해결해 나갔다. 각 지도자의 공통적인 관심사를 파악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자금을 하나로 모으는 여러 펀드를 개설해 LOPE의 은행계좌가 아닌 베데스다 소속의 개인은행 비밀계좌에 예치해 두었다. 그러나 버튼과 발모어 회장의 계획은 그들을 감시하던 LOPE의 하수인들 손에 유출되었다. 로트필드 남작은 이것을 도리어 발모어와 버튼을 이사회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얼마 후, 로트필드 남작의 밀명을 받은 하수인들이 바이오트론의 지도자들과 접촉했다. 하수인들은 지도자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고 포섭하여 단순히 바이오트론의 통합을 거부하는 것 이상의 비밀지령을 내렸다. 매수된 지도자들은 버튼과 바이오트론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비밀회의에서 큰 소란을 피웠다. 그들은 ‘이 합병은 발모어 회장이 노동자들을 컨트롤하려는 의도록 벌인 것이며 다른 기업들의 노동자들을 움직에 기업들을 지배하려는 것일 뿐 노동자들을 이용하기만 하려는 음모’라고 비난했다. 그 증거로 매수된 지도자들은 발모어가 버튼에게 보낸 전자편지를 제시했다. 그 내용은 완전히 가짜였고 버튼이 그렇게 혐오했던 거대기업의 음모들처럼 악의적이었다.

버튼은 반박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발모어 회장이 이일을 지원한 것은 사실이었고 버튼 도한 기업의 일원이라는 인식 때문에 노동자들 앞에서 진정성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의심은 모두에게 번졌고 회의는 파행으로 끝났다. 거기다 이 사건이 언론에 유출되면서 발모어 회장의 음모라는 이름으로 전 플랜트와 우주선에 중계되었고 기업들은 보도 내용에 크게 격분하였다. 그간 이사회를 운영하며 공명정대하다 여겠던 발모어 회장이 이렇게 비열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었다.

 LOPE 소유의 언론으로 보도를 접하고 버튼은 이것이 모두 로트필드가 꾸민 계략임을 알아차렸으나 이미 늦어 버렸다. 부도덕한 발모어라는 뉴스 다음으로 기업들은 이사회를 통해 발모어를 의장직에서 탄했하기로 결의했고 그 결의안에는 로트필드가 앞장섰다. 의장 직무가 정지된 발모어는 조사를 받는다는 명분하에 LOPE의 사병들로부터 연금을 당했고 버튼은 그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스스로 해결해나가야만 했다.

 버튼은 플랜트의 보안시설을 해킹하여 로트필드의 하수인과 지도자들이 만났던 장소를 발견했다. 그곳의 보안 카메라를 이용해 밀담하는 영상을 찾아 봤지만 영상 파일은 지워져 버린 다음이었다. 버튼은 이에 낙담했지만, 곡 누가가 지우기 전에 그 영상을 카피했던 흔적을 찾았다. 그 사용자는 특이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바로 발모어가 보여주었던 해적 방송의 그 이름, 파이럿츠였다.

 버튼은 엑소더스 선단 내 인트라넷으로 파이럿츠와 연락할 채널을 찾아 나섰다. 파이럿츠가 개인인지 단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로트필드 또한 그들을 쫓고 있는게 틀림 없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그는 파이럿츠에게 연락해 접선하는데 성공했다. 파이럿츠의 정체는 바로, 어느 젊은 여성이었다.

낡은 작업용 슈트를 입은 그녀는 자기의 본명을 제시카 휘트너라고 소개했다. 난민출신인 그녀는 자신이 혼자서 해적방송 파이럿츠를 운영해 왔다고 했다. 그녀는 생존 대출을 피해 도망다니는 소수의 난민중 하나로 거대기업들의 착취에 그냥 당할 수만은 없어서 사람들에게 진실을 계속 보여주고자 해적 방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로트필드 가문의 하수인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추적하던 중 보안 카메라 영상을 획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로트필드가 해적방송에 사용하던 통신포트를 모두 막아버려서 이제는 이를 전할 방법이 없었다. 버튼은 그녀에게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발모어 회장의 결백을 밝힌후 버튼이 하려는 일들 또한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버튼을 아직 경계했다. 영상이 담긴 디스크를 선뜻 건네주려다가도 자꾸만 버튼 앞에서 거두어 갔다.

제시카는 속지 않겠다는 의지로 가득차 보였다.


제시카 휘트너

당신을 어떻게 믿죠?

 아무리 이 플랜트를 만든 사람이라지만, 당신 또한 거대기업의 일원이잖아요.


로버트 버튼

그래요. 나 또한 그 일부에요.


제시카 휘트너

부정하지 않는군요.


로버트 버튼

지구에 두고 온 친구가 있어요.

이 플랜트를 함께 만든..


제시카 휘트너

아..


로버트 버튼

그 친구가 했던 말이 있어요.

그는 천국에서, 나는 지옥에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이든 하자구요.


버튼은 그녀한테 간절히 이야기를 했다.


로버트 버튼

나 또한 당신들을 이렇게 만든 거대 기업들을 증오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없인 우리도 존재하기 힘듭니다.

이게 현실이에요.

그래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함께 그들의 룰을 이용해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그들이 물러나도록...


제시카 휘트너

좋아요!

우리 거래를 해요.


로버트 버튼

조건을 말해봐요.


버튼은 그녀가 사적인 거래를 할 거라 짐작했다. 생존대출을 모두 갚게 해달라거나, 아니면 자기를 위한 특별구역을 알려달라거나 이미 이런식을 거래에는 적응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부탁은 뜻밖이었다.


제시카 휘트너

내가 이걸 주는 대신,

당신 말대로 이사회에서 주도권을 잡게 된다면,

나 같은 사람들이 계속 진실을 알릴 수 있도록 자유를 보장해줘요.


로버트 버튼

어떤 식으로요?


제시카 휘트너

모두와 연락하는 통신포트를 개방하면 될 거에요.

그것만큼은 기업들이 가지지 못하고 난민들의 몫으로 만드는 거죠.

그것만이 우리가 기업들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니까요.


그는 속으로 감동하여 대답했다.


로버트 버튼

좋아요.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때 붉은 색 레이저 같은 것이 제사카의 가슴을 겨눴다. 버튼은 얼른 그녀를 밀쳤다. 거의 동시에 총소리가 났다. 탄알이 내 오른쪽 어깨를 스치고 벽에 부딪혀 불꽃을 튀겼다. 난 쓰러진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그녀의 손을 잡아끌고 앞으로 뛰었다.


로버트 버튼

개자식들, 우주에서까지 총질을 하다니!

 

추적자들에게 쫓기던 버튼 박사는 해박한 플랜트 구조 지식을 바탕으로 추격을 뿌리쳤다. 그는 플랜트 내부에 있는 직각통로로 그녀와 함께 뛰어 내렸다. 이 통로는 공기순환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그 내부에는 버튼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안전 공간이 있었다. 추적자들은 제대로 속아 넘어 갔다. 깊고 어두운 낭떠러지 통로 아래로는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그들은 아무 의심없이 버튼과 휘트너가 우주 공간으로 뛰어내려 죽었다고 보고했다. 평소 버튼을 과소평가해온 로트필드는 이에 만족했다.

 살아남은 버튼은 뉴스에서 자신이 사고로 죽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를 기회로 삼기로 했다. 그는 LOPE 몰래 다시한번 바이오트론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LOPE에게 매수된 지도자들이 잠적하는 바람에 그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알고 보니 LOPE가 증거를 인멸하고자 그들을 암살하려 하고 있었다. 이에 휘트너가 버튼 박사를 도왔다. 그녀는 뉴스를 취재하며 얻은 인맥들을 바탕으로 숨은 지도자들을 찾아 냈고 버튼은 그들을 설득해 합병 문서에 서명하게 하였다.

 마침내 버튼은 합병문서에 모든 바이오트론 지도자들을 서명을 받는데 성공했다. 그 무렵 로트필드는 발모어 회장을 탄핵하는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해 놓고 자신이 의장 대행을 맡아 이사회를 개최하고 있었다. 버튼은 그 자리에 참석했다. 모두들 죽은 줄 알았던 버튼이 나타나 깜짝 놀랐다. 로트필드는 눈을 부릅떴고 버튼은 그들 앞에서 증거를 보여 주었다.

영상이 끝나자 각 기업의 대표들이 웅성거렸다. 일부 기업 대표들은 어딘가 침울해 보였다. 발모어 회장에 호의적이었던 몇몇 기업인들이었다. 마지못해 LOPE의 편에 서 있긴 했지만 그들은 지금 죄책감을 보이고 있었다. 발모어한테 배웠던 대로 그 점을 공략한다면 그들의 마음을 돌릴 수도 있을 것도 같았다.

 버튼은 생각나는 대로 말을 이어갔다.


로버트 버튼

발모어 회장님은 바이오트론과  에덴랩을 합병해 난민들 또한 이곳에서 선단의 방향을 결정짓는데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결코 비겁한 짓이 아니며 기업인으로서 모두를 위해 공헌하려는 마지막 업적이었습니다.

물론 로트필드 남작으로서는 결코 바라지 않던 일이었겠지만요.


의장 대행으로 자리에 앉아 있던 로트필드가 버튼을 노려 보았다. 버튼은 그를 외면했다. 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소위 발모어가 나한테 강조했던, 판이란 것이 완성된 것이다.

로버트 버튼

당신들은 로트필드의 공모자들입니다.

물론 구미가 당겼을 겁니다. 로트필드 남작이 당신들을 이끌었을 겁니다.

그가 당신들에게 안정을 약속했겠지요.

그의 말대로 따르면 우리가 구조했던 난민들이 당신들의 재산을 빼앗을 일도 없을 것이고, 쾌적한 삶도 계속될 테니까요.

이해는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들이 정도를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LOPE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있습니다.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이제 버튼이 쥔 패를 낼 차례였다.


로버트 버튼

내가 그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엑소더스 이사회의 멤버이자 에덴랩의 대표로서,

우리 회사가 바이오트론과 합병할 것을 선언합니다.


로트필드 오퍼니지

말도 안되는 소리! 이 플랜트를 누구의 돈으로 만들었는데 감히!

캡틴!


하지만 캡틴은 로트필드의 명령을 못들은 듯 안나를 바라보며 묵묵히 서있었다.


캡틴 로스트

..


안나

‘고마워요. 아저씨.’


로트필드가 소리 쳤다. 버튼은 마치 발모어 회장이라도 된 듯 놀랍도록 뻔뻔스럽게 받아쳤다.


로버트 버튼

감사합니다. 캡틴!

잘난 척 하지 말길 바랍니다. 오퍼니지 경.

이곳 사람들 중에서 이 플랜트를 만들려고 자신의 것을 희생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버튼은 전자서류를 꺼냈다.


로버트 버튼

합병에 동의하는 바이오트론 지도자들의 서명을 받아 왔습니다.

물론 로트필드 당신이 매수한 지도자들의 서명도 포함해서요.

그럼, 어디 계산해보지요.

바이오트론이 가진 자본금은 총 32억 6천ED로 이 금액은 엑소더스 선단 지분의 약 1%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구한 난민들이 직접 한푼 두푼 모금한 돈이죠.

당신의 그 노예대출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발모어 회장은 내게 베데스다 유니버셜의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그의 지분과 우리 바이오트론의 지분을 합치면 총 지분의 51%에 해당합니다. 이의 있으신 분 말씀하시죠.

역시나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버튼은 즐거운 마음으로 시스템을 이용해볼 겸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얼굴이 굳어진 이사들이 보였다.


로버트 버튼

여기 계신 누군가 우리의 합병에 제청을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누가 하시겠습니까?


메르니 코헨

내가 제청하겠소.


발모어 회장만큼 늙은 대표가 손을 들었다 메르니 중공업의 회장이었다. 이윽고 몇몇 이사들이 추가로 손을 들었다. 버튼은 너무도 기뻤지만 발모어한테 배운대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버튼은 의장석에 앉아 오만상을 찌푸린 로트필드에게 말했다.


로버트 버튼

이제 그 자리에서 내려오길 바랍니다. 남작.


그는 따르는 수 밖에 없었다. 버튼의 인생에 있어 가장 통쾌한 말이었다.


자신의 성으로 돌아간 로트필드는 엄청나게 화가 났다. 닥치는 데로 던져 깨어버렸다.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건물을 지으라고 일을 준 노예가 주인 행세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로트필드 오퍼니지

로버트 이놈오옴~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리겠어.

오퍼니지 가문의 이름을 걸고 놈을 기어코 죽여 버리겠어.

어떻게 하면.. 죽여버릴까..

암살 그래 암살.

 네 놈의 최후는 어느 누구의 칼인지도 모르고 어디서 왜 인지도 모르고 죽는거야.

그리고 죽기 직전에 내가 한 것인지 말하는 거지.

크. 크. 크.


이날 이후로 힘의 균형은 발모어와 버튼에게로 기울었다. 발모어 회장은 은퇴했다. 그는 오늘날의 엑소더스를 만든데 책임을 지고 새로운 개혁을 위하여 의장 자리를 젊은 버튼에게 양도했다. 그리하여 버튼은 엑소더스 이사회 의장 자리에 올랐고 실질적으로 선단의 방향을 통제하는 권력을 얻었다.

 버튼 박사는 난민들과 함께한 경험을 토대로 여러가지 규칙을 새로 만들어 잘못된 것들을 과감히 바로 잡았다. LOPE가 생존 대출로 행패를 부릴 수 없도록 수금을 제한하고 식수와 전기, 주거공간 등의 공공성을 지닌 재화는 각 기업들이 아닌 이사회 자체가 소유권을 갖도록 했다. 이 덕분에 난민들은 빚 독촉에 고통받거나 생필품을 사지 못해 고통받는 일이 없어졌다. 더불어 버튼 박사는 바이오트론을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식량 생산 협동조합으로 키워냈고 식량을 저렴하게 공급하여 모두에게 도움을 주었다. 이 조치들만으로도 난민들은 크게 기뻐했다. 통신주파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좀 미디어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던 방송포트들을 자유롭게 풀어 파이럿츠가 합법적으로 방송할 수 있도록 약속을 지켰다. 결과적으로 이는 난민들의 언론이 생겨나는데 일조했다. 이제 어느 누구도 플랜트에 일어나는 일을 투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칙을 마련했고 각 기업들의 사병이 행해오던 비인간적인 행위 또한 금지했다. 이제부터는 오직 이사회 소속의 치안관들만이 치안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며 재판이나 사법철차 또한 이사회에서 임명한 법관들이 행사하였다.

이렇게 난민 노동자들이었던 엑소더스의 대중들은 시민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버튼 박사는 이를 절묘한 균형감각으로 이룩해내었다. LOPE를 포함한 일부 기업들이 그의 개혁을 단단히 벼렸지만 그들은 상황을 뒤집을 명분을 얻을 수가 없었다. 버튼 박사가 기업들의 이익도 보전해 주어 불만을 잠재운데다가 무엇보다도 난민들이 열광할 만큼 엄청난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로트필드는 장기전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기업들 가운데서도 엘리트 의식에 휩사여 있는 기업들을 모아 당파를 결성했다. 이들은 돈과 에너지, 유통 같은 재화를 담당하는 기업들이라 스스로를 코인 트러스트라 부르게 되었고, 버튼 박사의 정책에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자 버튼 박사의 주도하에 항공우주기업 베데스다와 식량생산기업 바이오트론, 중공업의 메르니, 제조업의 미스코어 등이 동력을 뜻하는 해머를 붙여 해머 트러스트를 결성하였다.

 버튼 박사의 사후에도 버튼의 후예들은 시민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을 신조로 삼았고 이를 명예로 여기는 가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LOPE의 로트필드 가문을 필두로 한 코인 트러스트는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영위하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계속 누려가며 귀족 신분을 제도화 하려했다. 이러한 변화는 수천년에 걸쳐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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