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2. 망국의 왕자 6. 반중력 기술

오상준
2018-04-30
조회수 307

6. 반중력 기술


 유랑을 시작한지 천년동안 엑소더스 선단은 그들의 선조들이 상상활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기업들의 우주선 건조가 완료되었고 일부 난민 시절 우주선들이 장거리 항해를 견딜만큼 개조되었다. 이 우주선들을 엑소더스인은 순항 우주선이라 불렀다. 이 순항 우주선들이 플랜트에서 벗어나 활약하면서 플랜트를 중심으로 한 선단의 활동영역은 비약적으로 넓어졌고 이는 적극적인 개척으로 이어졌다. 바야흐로 대항해 시대가 엑소더스 선단앞에 펼쳐진 것이다.

 선단 외부의 우주공간은 크고 작은 우주선들로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 엑소더스인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된 소행성 지대에서 물과 광물같은 자원들을 채위하여 선단으로 귀환하는 모험을 반복했다. 특히나 기업의 거대한 우주선들은 각 기업의 모함 역할을 하면서 플랜트 곁을 벗어나 자원을 찾아 나서는 등 하나 하나가 기업의 이동식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이렇게 확보된 자원은 플랜트의 증설과 새로운 우주선을 건조하는데 활용되어 엑소더스 선단의 중심인 플랜트는 역동성이 넘치는 공장처럼 쉴새없이 돌아갔다. 노예로 전락할 뻔한 시민들은 이 새로운 모험을 기회로 여겼고 오늘날 에르시온 사람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불굴의 의지와 도전 정신은 바로 이때 태동되었다. 그러나 여전회 엑소더스 선단의 대다수 인구는 플랜트의 거주시설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삶은 화려한 모험을 펼치는 주역들에 비해 보잘 것 없었다. 이빈들 중 새로운 모험을 시도한 일부만이 우주선 선장이 되어 자신들만의 주거공간을 갖는 사치를 누렸지만 그것은 복권 당첨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사회적으로도 변화가 생겼다. 선단이 처음 결성된지 이백여 년 후 벌인 전체투표로 이사회는 의회로 변경되었다. 각 기업들은 그들이 가진 지분만큼 의원을 선출하였고 시민들 또한 바이오트론의 지분으로 의원들을 뽑아 견제했다. 그럼에도 엑소더의 사회는 기업들이 인프라를 거머쥐고 있는 한정된 공간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여전히 기업이 가지고 있는 보수적인 성향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창업자들의 후예가 기업의 주도권을 세습하면서 기업의 주인인 명문 가문들이 본격적으로 실력을 행사했다.
 이 무렵, 버튼 가문은 여전히 해머 트러스트의 수장직을 유지하면서 엑소더스 선단 내 핵심 주도층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가문의 새로운 후계자는 젊은 워드루프 버튼으로 그의 아버지이자 의장이었던 엔드오프 버튼이 일찍 사망한 탓에 젊은 나이에 의장직을 물려받게 된 것이다.

 의장직은 중요한 직책이었다. 기업들로부터 세금을 걷고, 정책을 세우는 것 외에도, 앞으로 선단이 나아갈 곳을 정하는 키잡이 역할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 워드루프 버튼은 어딘가 엉뚱한 면이 있었다. 그는 분명엑소더스인 답게 용감하면서도 밝고 총명한 젊은이였지만 엑소더스인들이 살만한 새로운 지구를 찾겠다는 일생일대의 목표를 세워 두었다.

 문제는 그의 목표가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해무맹랑해졌다는 것이었다. 선단이 천년에 가까운 항해를 하면서 관측을 했지만 지구를 닮은 행성은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역대 엑소더스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지구를 찾는 일이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라고 인색했고 순진 무구한 사람들이 꾸는 꿈처럼 여기게 되었다. 나중에 가서는 새로운 지구를 찾아야 하는 필요성도 찾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이미 그 존재가 막연해진 지구란 행성 대신 우주선 내부에 대다수의 시민들은 가질 엄두도 못내는 안락한 주거 공간이 있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장직에 오른 워드루프가 가장 먼저 행한 일은 베데스다 유니버셜의 발모어 가문과 함께 신지구 탐사용 우주선을 건조하는 것이다. 용감한 자원자들이 이 우주선을 타고 가능성이 있는 우주로 탐험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은 몇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워드루프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기능이 개선된 새로운 우주선의 건조를 시작했다.

 하지만 같은 해머 트러스트 내의 가문들조차 워드루프가 너무 몽상가라는 불만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분명 워드루프의 몇몇 행동은 코인 트러스트에게 빌미를 제공할 우려가 있었다. 심지어는 버튼가와 가장 밀접했던 발모어 가문조차도 무모한 모험으로 자원이 낭비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겼다.

워드루프가 새로운 탐사선의 컨셉을 가져왔다고 했을때, 나는 그를 한대 때려주고 싶었다. 이미 다섯대의 탐사선을 소행성 지대 밖으로 보냈지만 그들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이 위대한 버튼 박사의 후손은 새 탐사선의 개선 계획을 설명하고 있었다.

레노는 베데스다 유니버셜의 CEO 겸 의회의 우주선 담당관이 아닌, 워드루프의 친구이자 연장자의 입장에서 그를 혼내기로 결심했다.


레노 발모어

네가 설명한 그 반중력 추진 우주선에 대한 건 잘 들었어.

근데 그 얘기는 이미 보낸 탐사선과 통신이라도 된 후에 하는게 어때?


워드루프 버튼

흠 그렇지 미안, 나중에 얘기했다가는 까먹을 것 같아서.


워드루프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레노는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레노 발모어

너의 그 이상은 존중하지만 자꾸만 그런 태도를 보이다가는

로트 필드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로트필드는 사람들 앞에서 이번 모험을 실패로 규정하면서

너를 공격할만한 능력이 있단 말이야.

넌 이제 의장이니까 이럴때 일수록 처신을 똑바로 하라고.


워드루프 버튼

미안해 레노 내가 성급했나봐


워드루프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워드루프 버튼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들은 꼭 돌아올 거니까.


레노 발모어

그걸 어떻게 장담해?


워드루프 버튼

난 그들을 믿어.

그들은 강인한 사람들이고, 정말 열의가 넘치는 영웅들이야.

내가 그들을 강제로 보낸게 아니란 건 레노 너도 알잖아.

그 사람들은 모험을 하고 싶었어, 내가 그걸 들어준 거고.


레노 발모어

네가 설레발을 쳤던거 아냐,

아무리 꿈이 좋다지만 좀 자중할 순 없니?

심지어 우리 가문 사람들도 너한테 불만을 갖고 있단 말야.


워드루프 버튼

미안하지만 여기서 멈출순 없어.


워드루프가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워드루프 버튼

내가 이렇게 서두르려는 이유는 말야.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야. 

새로운 지구를 발견하고 도착하는 일 말야. 

난 의장직을 갖고 있을때 할 수 있는 모든일들을 다 해보고 싶어.


워드루프가 그 순진한 눈을 깜빡거렸다. 열의가 살아 숨쉬는 이 젊은 의장을 레노는 더 이상 압박할 수 없었다.


레노 발모어

알았어. 

어디 그럼 그 반중력 기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지.

에이비오 중공업 기술이라고?


워드루프 버튼

응, 아직 미완성이지만.

정말 고마워, 레노.


 그러면서 젊은 의장 위드루프가 붙임성 있게 웃어 보였다. 겉으로 내색은 못해도 레노는 불만이었다. 위드루프와 메르니 중공업의 루트반이 매번 그 새로운 지구를 찾는 현실성 없는 계획 때문에 많은 시간을 허비한단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워드루프가 새로운 지구 탐사에 나선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어릴적부터 선조들이 떠난 지구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가 배운 바에 따르면 선조들은 광활한 대지를 뛰어 다녔고 큰 집을 짓고 대지의 보살핌 속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그러나 엑소더스 인들은 태어날때부터 여러 족쇄를 차고 있었다. 우주선의 좁은 공간에서 살았고 생존 대출이 세습되었다. 특히나 플랜트에 사는 사람들은 그 문제가 심각했다. 부유층은 여러 우주선으로 이사하여 안락한 환경을 누렸지만 플랜트에 사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오든 불편을 감수하고 살았다.

 새로운 지구가 있다면 거기서 살면 될텐데. 처음엔 이런 막연한 꿈에 불과했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도 작용했다. 그저 어린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전설로만 지구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뿐, 이제는 새로운 지구를 발견한다는 걸 다들 포기하고 있었고 스스로를 지구인의 후예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린 위드루프는 사람들의 반응에 실망해 있던중 선조들이 지구 유물을 모아 지은 ‘박물관’에서 생생 마음 속에 새겨 놓을 명언을 발견했다. 엑소더스의 초대 의장이었던 피터 발모어 회장이 죽기 전에 사람들에게 남겼다는 말이었다.


불가능을 확신하긴 어렵다.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이요, 내일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워드루프는 이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이 플랜트의 존재 자체도 기적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또한 못하리라는 법이 어디 있으랴.

 나이를 먹어가면서 워드루프는 그 꿈을 점점 키워나갔다. 새로운 지구를 발견해 그곳에 정착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사람들을 일깨우고 지구인의 후예다운 해방된 삶을 살도록 하려면 그들에게는 반드시 새로운 고향이 필요했다.

 이런 위드루르를 엑소더스의 고위층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다. 다만 시민들에게 이 젊은 의장은 인기 만점이었다. 평소에 선단을 잘 운영해 나간데다가 그에게는 일종의 이상을 전달하는 순진 무구한 카리스마 같은게 있었다. 워드루프는 여러번의 대중 연설로 지구인의 후예에 대한 자신의 이상을 피력했고 사람들이 신지구에 대한 꿈을 현실화하도록 공을 기울였다.

 워드루프의 노력으로 대중들은 신지구를 찾는 프로젝트에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을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기 위한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부류도 있었으나 워드루프는 꿋굿이 나아갔다. 그에게는 동지도 있었다. 바로 루트반 메르니라는 청년이었다. 그는 에이비오 중공업의 메르니 가문에 속한 젊은 인재로 두 사람은 어릴때부터 친구였고 지구에 도착해 드넓은 대지를 누비는 꿈을 함께 꾸어 왔다.

 새로운 지구를 발견하는 일과 더불어, 그곳까지 무사히 갈 수 있게 선단의 항속속도를 올리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문제는 속도가 느린 플랜트였다. 플랜트가 순항 우주선 급 이상의 속도를 내지 않으면 지구로 가기전에 모든 물자가 바닥날 우려가 컸다. 지금까지 엑소더스 선단은 마치 유목민처럼 소행성 무리를 기점으로만 이동해 왔는데 새로운 지구로 하는 항로에 소행성들이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루트반은 천재적인 기술자였다. 그는 에이비오 중공업이 기술적인 한계에 막혀 중단했던 연구를 이어받아 거의 완성시키는데 성공했다. 바로 반중력 기술이었다. 반중력 시술을 엔진에 적용하면 엔진의 저항을 소멸시켜 출력을 배가시킬수 있었고 이는 항속거리를 몇 십배 이상 늘릴 수있는 혁명적인 발전이었다. 다만 막대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문제 때문에 그들은 이 기술을 실험실에만 테스트하고 있었고 코인 트러스트에게 신기술이 유 출되지 않도록 워드루프와 루트반은 아무도 몰래 해결책을 강구했다.

 강력한 에너지원이 있다면 해결될 문제였다. 위드루프와 루트반은 소행성을 조사하면 무언가 찾을 수 있을거라 확신했다. 에너지원이 되는 신 물질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반중력기술을 적용하는 플레이트의 제작이 가능했다.

 선단의 운영 때문에 바쁜 워드루프를 대신해 루트반은 여러 채광회사와 접촉해 샘플을 조사중이었다. 그러던 중 루트반은 미스코어 채광회사를 방문하여 이 회사의 총수 보나르를 만났고 보나르 총수의 딸 실비아 보나르와 마주쳤다. 루트반은 무언가 마법같은 사랑에 빠졌다. 그는 일부러 미스코어 채광회사를 자주 방문했고 나중에는 그녀에게 고백까지 했다. 실비아는 그 고백을 받아 들였고 두 사람은 연인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실비아에게는 처음부터 흑심이 있었다.

 실비아 보나르의 아버지 보나르 총수는 말단 사원부터 시작해 총수 자리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 그는 소행성에서 큰 광백을 발견해 일반 시민들은 갚을 엄두도 못하는 생존 대출을 모두 갚고는 미스코어사 내의 여러 세력들을 누르고 총수가 되었다. 그는 매우 기회주의적이었고 탐욕스러운 인물로 유명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딸 실비아를 이용할 정도였는데 그녀의 미모로 주요 기업 간부들을 홀려 핵심 정보를 빼내는 식이었다. 실비아는 위험속에서 자라왔기에 이러한 일들을 당연할 것으로 받아 들였다. 미스코어를 운영해온 창업주 가문의 대가 끊기면서 미스코어를 차지하려는 암투가 끊이지 않았고 그녀는 위험으로 부터 아버지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어떤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 무렵 미스고어사는 고 에너지를 활용하는 신기술들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바로 그들이 별견한 미스트롤리움이라는 신비로운 물질 때문이었다.

 미스트롤리움은 스스로 순수한 에너지를 발생시키면서 어떠한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미스코어사는 이 물질을 어느 소행선 광산에서  처음으로 채취했다. 미스트롤리움을 분석한 미스고어사 연구진은 이 새로운 자원이 스트코어사가 연구해온 상온 핵융합로를 유지시킬 꿈의 물질이라는 것을 발견해 냈다. 핵융합로는 무한에 갂운 에너지를 발산해 플랜트의 크기를  비약적으로 증설토록 하는 가능성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제까지는 상온 핵융합 반응은 오래 유지시킬 수 없었다. 미스트롤리움이 이 상온 핵융합 반응을 유지시켜주는 꿈의 물질이었다. 소량의 미스트롤리움만 있어도 플랜트를 두배이상 확장할 에너지를 반 영구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보나르 총수는 이 새로운 자원과 기술을 코인 트러스트 진영에 합류할 무기로 쓰기로 했다. 그는 그 비천한 태생 때문에 로트필드 가문에게 소위 귀족으로 인정받는게 일생일대의 야망이었다. 그는 미스트롤리움과 상온 핵융합 기술을 로트필드 가문에 넘기기로 했고 그 전에 혹시나 핵융합 기술을 능가하는 새로운 기술 때문에 미스트롤리움의 독점권을 빼앗길까 우려했다. 보나르는 누군가 그러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 기술을 위해 미스트롤리움을 내어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실비아는 이것 때문에 루트반에게 접근했던 거였다. 루트반이 연구한다는 반중력 기술이 얼마나 그들에게 위협적인지 알아내는게 목표였다. 루트반은 실비아의 속마음은 꿈에도 모르고, 그녀에게 자신이 연구하는 반중력 기술의 전부를 공개했다. 그런데 이때 실비아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루트반은 지금껏 실비아가 염탐해온 그 어떤 남자와도 달랐다. 그들은 하나같이 탐욕스럽고 추악했지만 루트반은 순수한 열정으로 새로운 지구로 나아가는 꿈을 꾸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반중력 기술에 대한 것을 알아내는데는 성공했지만 아버지에게 이 정보를 알려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이 기술을 파괴하려고 할 터였다. 실비아는 결국 아버지에게 그 반중력 기술이란 것이 보잘것없는 수준이라고 거짓 보고를 했다. 그런데 로트필드 가문을 방문한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의 심경을 어둡게 만드는 이야기를 했다. 로트필드 가문이 미스트롤리움과 핵융합 기술을 제공받는 대가로 그녀와 혼인을 맺겠다고 제안해 왔다는 거였다.

 실비아로서는 그 제의를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녀 또한 루트반을 사랑하고 있었고 마음이 흔들리게 되었다. 하지만 가문을 위해 살아온 그간의 가치를 어길수는 없었고, 그녀는 자길 진정 좋아해준 루트반을 지켜주기로 마음억었다.

루트반은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실비아 보나르는 이미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다. 그를 위해, 스스로를 위해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시간이었다.


실비아 보나르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루트반.

지금까지 당신을 속였으니까요.

난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당신이 가지고 있던 그 반중력 기술이 목적이었어요.


루트반

실비아..


루트반이 울먹였다. 실비아는 처량해진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는 아버지 몰래 가지고 왔던 것을 루트반에게 건냈다.


실비아 보나르

이걸 받아요.


투명한 샘플통안에 든 광물질이 반짝이고 있었다. 루트반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그걸 받아들었다.


실비아 보나르

미스트롤리움이라고 하는 거에요.

당신이 고안하고 있는 반중력 플레이트에 이게 있으면 도움이 될거에요.

그럼.. 이만.


실비아는 떠나려다 멈칫했다. 루트반은 미스트롤리움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지금 그 순간 그에게 필요한 건 오직 실비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실비아 보나르

부디 그걸 꼭 완성해줘요.


 실비아가 플랜트 내부의 깊숙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루트반은 밀려오는 슬픔을 견딜 수가 없어 고개를 숙였고 손에 쥐고 있는 반짝거리는 광물질에 눈을 맞췄다. 이것이 뭐든 지금은 아무짝에도 필요 없었다.

 루트반이 마음을 추스리는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 실비아가 로트필드 가문에게 시집을 갔다는 뉴스가 나왔고, 루트반은 그녀의 마지막 막을 상기하면서 광물질을 분석했다. 그것은 반중력 발생장치의 에너지를 유지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물질이었고 마침내 루트반은 그 광물질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장치를 만들어 반중력 플레이트를 완성시켰다. 그 장치는 주변에 있는 모든 물건의 중력을 무력화시켰고, 실험용 모형 우주선의 주진기관에 장착하여 작동시키니 비약적으로 추진력이 향상되었다.

 루트반은 위드루프와 함께 반중력 플레이트의 완성을 자축했다. 여전히 실비아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지는 그였지만 그녀가 바랬던 것을 완성했다는 기쁨에 루트반 또한 뿌듯했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LOPE의 플랜트 2.0 계획이었다.

 제 12대 로트필드 공작 해리엇 로트필드는 미스코어사로부터 획득한 미스트롤리움과 핵융합 기술을 토대로 플랜트 2.0 계획을 의회에서 발표했다. 이 계획의 골자는 플랜트의 규모를 확장해 시민들을 위한 새로운 주거공간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늘어나는 플랜트의 인구 때문에 플랜트를 확장하려는 계획은 예전에도 시도된 바 있었다. 그러나 플랜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핵원자로에 한계가 았어 매번 무산되어 왔다. 이에 미스트롤리움을 활용한 핵융합로를 플랜트 중심부에 설치하고 이를 통해 얻는 막대한 에너지로 낙원이나 다름없는 플랜트 2.0을 건설하겠다는 것이었다.

 플랜트 2.0 계획은 신지구에 가지 않고도 워드루프가 평소 지적해온 사회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보였다. 이 계획이 실현되다면 플랜트에 살 수밖에 없는 가난한 시민들도 쾌적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로트필드 가문이 짜놓은 함정이었다. 그들은 플랜트 2.0에 입주할 시민들에게 값비싼 입주권을 팔 계획이었다. 그와 동시에 LOPE는 입주권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대출 플랜을 홍보할 것이고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시민들은 또 다시 제2의 생존 대출을 지더라도 플랜트 2.0에 큰 호응을 보였고 해머 트러스트는 마땅히 내놓을 뾰족한 대응책이 없었다.

 워드루프가 물러나고 레노 발모어가 의장이 되어 플랜트 2.0의 문제점을 전면으로 공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워드루프가 이런 상황을 해쳐나가기엔 너무 유하다는 비난이었다. 정작 워드루프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로트필드가 이 플랜트 2.0 계획 때문에 미스트롤리움을 독점 하겠다고 한데 신경이 쓰였다. 그들이 미스트롤리움을 독점하면 반중력 플레이트를 제작할 수 없었다.

 워드루프는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다.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고 반중력 플레이트를 완성한 루트반을 위해서라도 미스트롤리움의 독점만은 막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의장의 자리에 있는 그라해도 미스트롤리움의 독점을 제재할 명분은 없었다. 결국 마지막 방법은 코인 트러스트를 포함한 모든 의원들에게 호소하는 길뿐이었다.

 워드루프는 오래전에 작성했던 ‘에르시온 선언’이란 연설을 손보기 시작했다. 에르시온은 그가 구지구의 이름을 빌려 만든 지구인이라는 뜻의 신조어였다. 이것은 탐사 우주선이 새로운 지구의 존재를 발견하고 돌아오면 모든 엑소더스 시민들에게 발표하려고 준비했던 연설이었다. 선조들의 혼을 물려받아, 새로운 지구인이 되자는 결의를 담은 내용으로 언젠가 이것을 사람들에게 발표하는게 어릴적부터 간직했던 그의 꿈이었다.

 워드루프는 연설문을 수정해 반중력 플레이트 기술이 사장되지 않도록 부디 미스트롤리움을 제공해줄 것을 호소하기로 했다. 필요하다면 의장직과 버튼 가문이 가진 모든 특권을 포기하겠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마침내 정기 의회가 열리는 날 그는 연단에 올랐다. 그를 비웃는 코인 트러스트 의원들 앞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연설문을 꺼내 읽으려던 바로 그때, 놀라운 소식이 온 선단에 전해졌다.


워드루프 버튼

존경하는 엑소더스 선단의 일원 여러분


 워드루프가 말문의 열었지만 의사당 안은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이유없이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있었다. 워드루프는 연설을 멈췄다. 의원들은 저마다 개인 단말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파이럿츠가 내보내는 방송이었다. 연설문을 읽으려던 워드루프는 어안이 벙벙해 있었고, 해머 트러스트 의원들이 나서서 의사당의 대형 홀로그램 생성기에 파이럿츠 뉴스를 전송했다.


파이럿츠 뉴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방금전 탐사 우주선 카론 호가 플랜트의 통신소와 교신에 성공했습니다. 

저희 파이럿츠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카론호는 그간 전설로만 알려졌던 세일호 메시지를 수신했다고 합니다.


기적같은 일이었다. 워드루프는 꿈만 같았다. 그는 얼른 연설문을 품안으로 집어 넣었다. 어수선한 의문들 몰래 그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레노와 루트반이 혼이 나간듯한 얼굴로 그를 맞이 했다. 로트필드 가문의 의석쪽을 바라보니 로트필드 공작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한 듯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레노 발모어

워드루프.


레노와 루트반이 동시에 말했다. 먼저 다가온 건 레노 쪽이었다. 그는 미안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레노 발모어

네가 했던 일들을 비난해서 정말 미안해


워드루프 버튼

무슨 말이야, 레노. 

네 덕분이야. 네가 만든 우주선이 해낸 일이라고.


레노 발모어

축하해, 워드루프.


 마음 고생이 심했던 루트반이 워드루프를 와락 껴안았다. 루트반을 토닥여주면서 워드루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이야말로 반중력 기술을 어필하 절호의 기회였다.

 의회는 황급히 세일 호 신호에 대한 안건을 상정하였다. 시민들의 관심이 대단하여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돌아온 탐사 우주선 카론호는 알려진 우주의 외각지역에서 처음 접하는 형태의 전파를 수신해 가지고 왔다. 그 전파를 해독하니 세일 호 라는 메시지가 떴고 그들은 그것이 새로운 지구의 발견을 뜻하는 오래된 전설적인 구호임을 알고 있었다.

 발모어 가문의 베데스다 유니버셜은 전파의 발원지를 축적하여 전파가 발신된 지점의 정확한 위치를 계산해 냈다. 그리고는 만약을 대비해 그곳까지 가는 항로까지 산정해 두었다. 그것은 엑소더스 선단의 현 위치에서 몇 광년 떨어진 지역이었고 그 사이의 우주는 소행성들이 전혀없는 무의 공간 이었다.

 의회는 이 새로운 지구로 나아가는 항로를 채택할 것인지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내심 플랜트 2.0 계획이 세일 호 메시지로 잊혀져 불쾌했던 코인 트러스트는 이 새로운 항로가 너무도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이 메시지가 수신된 곳과 현 위치가 너무나 멀고 자원을 확보할 소행성 지대도 없다는 것이었다.

 해머 트러스트쪽은 이미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루트반 메르니는 의회에서 그가 제작한 반 중력 플레이트를 선보였다. 모든 시민들이 중계방송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루트반은 반중력 플레이트를 장착한 엔진을 점화하여 몇 십배에 가까운 추력을 내는데 성공했고, 이 기술을 사용하면 소행성 지대의 개척 없이도 새로운 항로가 실현 가능함을 입증해 보였다.

 이 실험결과를 본 대중의 열망은 대단했다. 과반수 이상이 신지구로의 항로를 지지했다. LOPE의 독보적 행보에 내심 불만이었던 기업들도 등을 돌렸다. 이 신기술이 미스트롤리룸을 필요로 한다는게 알려지자 미스트롤리움의 독점을 고집해온 코인 트러스트들에게 비난이 쏟아졋다.

 로트필드 공작은 결국 미스트롤리움 독점을 철회하였고, 이는 사실상 해머 트러스트의 승리로 간주되었다. 이윽고 표결에 부쳐진 신 항로 찬반 투표는 찬성이 압도적이었고 워드루프는 반중력 플레이트 기술을 이용한 신지구로의 항로 변경을 선포하였다.

 그 후 몇 년간 엑소더스 선단은 물자를 비축하고 우주선에 반중력 플레이트를 장착하는 준비기산을 가졌다. 워드루프 버튼은 이 모든 준비를 열정적으로 진두 지휘했고 당파와 세력, 계급 구분을 초월한 분위기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마침내 출발을 앞둔 당일, 워드루프 버튼은 그토록 꿈에 그리던 ‘에르시온 선언’을 모든 엑소더스인 앞에서 발표했다.


워드루프 버튼

제 심금을 울린 명언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선조들이 믿었던 격언이기도 하지요.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이며, 내일의 현실이다.’ 라는 말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말을 믿었습니다. 

덕분에 이 선단이 생겼고 지금으로부터 800년 전에 멸망한 지구를 벗어나 유랑을 시작하였죠.

어떤 동포들은 새로운 지구를 발견했고 우리에게 약속했던 메시지인 세일 호를 보내왔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싸움도 잠시 멈추고 기업이든 가문이든 시민이든 하나로 힘을 합쳐 드디어 출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이시점, 저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지구인의 후예라는 가치를 되찾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선단의 모든 여러분께 우리 종족의 새로운 이름을 감히 제안할까 합니다. 

것은 바로 에르시온, 지구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만이 앞으로 우리가 마주칠지 모르는 어떠한 외계종족이나 우리와 같은 조상을 가진 지구인의 후예에게 떳떳함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또한 멸망이란 운명에 굴하지 않고 용기를 펼친 위대한 선조들의 뜻을 이어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제2의 고향에 정착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는 에르시온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신지구와 그 곳에 있을 동포들은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오직 우리만이 인류의 진정한 후손입니다.


 워드루프의 에르시온 선언은 새로운 출발을 앞둔 선단 사람 모두를 감동시켰다. 선단 모두가 워드루프의 연설에 동의하는 뜻으로 출발 직전 우주선 표면을 변경했다. 관습적으로 함선명에 포함되었던 엑소더스란 선단 명을 모두 에르시온이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모두들 스스로가 지구인이란 마음을 새로이 품고 신지구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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