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2. 망국의 왕자 7. 하늘에서 온 사람들

오상준
2018-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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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하늘에서 온 사람들


 에르시온 선단은 신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4521일을 항해했다. 선단은 속력은 광속이 가깝게 가속되었다. 반중력 플레이트의 도움으로 소행성 지대를 벗어나면서 선단은 새로운 지구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신하는 세일 호라는 메시지를 직접 수신했다. 순항 우주선을 보낸 워드루프의 혜안이 반짝이는 순간 이었다. 소행성 지대가 메시지를 교란한 탓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그 메시지는 결코 그들에게 전달될 수 없었다.

 에르시온 선단은 오랜시간 어떠한 천체와도 마주치지 않은 검은 무의 공간을 항해했다. 한 배에 타고 있다는 것을 그처럼 실감했던 기기가 없었다. 한번도 보지 못한 목표를 위해 대양을 항해하는 선원들처럼 선단의 인원들은 점점 불안에 휩싸였다. 그럴때마다 워드루프가 열정적인 리더십으로 다시금 사람들을 이끌어 나갔다.

 항해중에도 코인 트러스트의 로트필드는 뒤에서 은밀히 워드루프의 체제를 붕괴하는 공작을 벌였다. 사람들을 불안에 빠트리는 소문을 퍼트리거나 의회에서 공개적으로 워드루프의 결정에 트집을 잡는 식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워드루프를 시민들은 굳건히 지지했고 결국 코인 트러스트는 신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침내 항해를 천일 남겨 두었을때 에르시온 선단은 아름다운 성간 구름을 뚫고 신지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항성계를 관측했다. 500일을 남겨 두었을 때, 그들은 전파가 발단되는 행성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 작고 푸름 점에 모두들 희망을 가졌고 물자가 거의 다 떨어져가고 있었으나 에르시온인들은 견뎠다. 에르시온 선단은 신지구의 궤도 앞에서 속력을 줄였다. 얼음 결정 띠가 둘러진 푸른 행성이 그들 앞에 있었다. 경탄도 감격도 잠시, 워드루프는 선단의 모든 우주선들이 착륙할 수 있는 대륙 북부의 평야 지대를 착륙 장소로 정했다.

 여기서부터 경쟁이 시작되었다. 저마다 착륙할 장소를 자율적으로 정하기 시작하면서 각 가문의 우주선들은 자신들의 살 땅을 확보하고자 착륙중인 우주선의 진로를 방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워드루프는 여기서 이미 직감했다. 새로운 세상으로의 정착이 에르시온인들의 분열을 야기할지도 모른다고.

 에르시온의 우주선들은 플랜트를 중심으로 이니티움 평야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윽고 워드루프가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각 우주선 집단은 땅을 확보하자 마자 서로에게 적대적으로 변모했고 일부는 이미 땅을 더 차지하고자 무기까지 준비해두고 있었다. 이를 중재하려 의회를 열었지만 아무도 의회에 참석하려 하지 않았고 선단 체제가 깨져 버렸다는 걸 워드루프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에르시온은 산산조각 쪼개질 위기였다. 워드루프를 비롯한 해머 트러스트의 일원들은 에르시온인을을 다시 규합하려면 나라를 건국하는 길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해머트러스으와 더불어 가장 큰 세력인 코인 트러스트와 첩촉해 새로운 나라 건국에 대한 협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코인 트러스트는 아쉬울 것이 없는 입장이었다. 로트필드 공작은 도리어 해머트러스트를 배제하고 독자적인 나라를 건국하는데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코인 트러스트의 협조가 없이는 하나의 나라를 세우기란 불가능했다. 워드루프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는 협상장에서 코인 트러스트 인사들에게 과감한 제의를 했다. 통합하는 대신 LOPE가 아직도 쥐고 있었던 생존 대출을 해머 트러스트가 대신 지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는 코인 트러스트의 아쉬운 점을 제대로 긁어준 제안이었다. 이대로라면 코인 트러스트는 시민들로부터 생존 대출을 더 이상 징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내부에서 의논해보겠다는 로트필드 공장에게 워드루프는 한가지 제안을 더 하였다. 코인 트러스트에게 어떤 간섭없이 신지구를 자유로이 개척할 수 있는 개척권을 주겠다는 특권 제의였다. 좌중이 술렁거릴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에 더 이상 코인 트러스트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코인 트러스트의 가장 큰 적수인 해머 트러스트가 방해 없는 개척권을 보장하였으니 이 새로운 체제를 이용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도리어 이득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양측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데 합의를 보았고, 이들의 합의는 분열된 위기에 처했던 에르시온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했다. 코인 트러스트는 언젠가 자신들이 정권을 차지할 욕심을 숨기고 통합에 앞장섰다. 그런데 바로 이때 코인 트러스트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시민들이 자신들을 대신하여 생존 대출을 지기로 협상한 내용에 감동해 워드루프를 왕으로 추대하기로 하자는 혁명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전까지는 에르시온에서 왕이라는 자리는 오래 전 지구시절의 유물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코인 트러스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여 불안해하던 해머 트러스트에서는 코인 트러스트의 견제를 위해서라도 권력이 필요했고 이를 워드루프가 받아들이도록 강력히 권고했다. 워드루프는 시민들을 지키는데 권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흔쾌히 승낙했다.

 워드루프의 제안으로 조촐한 대관식이 이니티움 평야에 착륙한 플랜트에서 이루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변할 줄 예측하지 못했던 로트필드 공작은 워드루프 왕에게 새로 소집할 의회의 의장직을 받았음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신지구에 도착한 후로 한층 악랄해진 그는 더 이상 해머 트러스트와 정면 대결하는 것은 민심을 얻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그는 새로운 전략을 취하기로 결심했다. 표면적으로 워드루프 왕을 보필하는 충실한 신하로서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의 권위를 깍아내리는 일을 야금야금 진행해 나갔다.

 이렇듯 코인 트러스트의 위험은 더 간교하게 변했지만 당장 버튼 왕가의 앞날은 영광스러웠다. 초대 국와이 된 워드루프 왕은 통합과 안정을 성공적으로 이룩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르시온인들이 그를 중심으로 다시 뭉쳤고 에리시온 연합왕국 의회가 다시 열렸다. 내부의 결속이 끝나자 워드루프는 외부의 잠재적 위험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그들에게 세일 호 메시지를 보낸 가이아인들과 접촉했고 가이아인들의 대표와 빛의 사원에서 회담을 열기로 했다.


“모든 인류를 위해 이곳 빛의 사원에서 신호를 보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히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은혜가 우리에게 낙원을 밟게 해주었습니다.”


 워드루프 왕이 선뜻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 모습을 가이아의 대표들은 머뭇거리며 지켜보았다. 에르시온인들에게는 이미 익숙했지만 그들은 왕의 적극적이며 붙임성 있는 태도를 처음 접했다. 가이아인에게 아스테는 위엄있고 권위적인 조재인지라 경거망동 하지 않고 격식을 차리는 것이 주요 덕목이었다. 그럼데 워드루프 왕은 소위 체면을 차리지 않는 듯했으니 가이아인들로서는 충분히 당황스러울 만 했다.

 가이아인들 중 그를 감당할 사람은 오직 노련한 아스테인 라미 아가레스 뿐이었다. 마음이라도 통한 듯 그는 친히 워드루프 왕의 손을 잡은 후 빛의 사원 내부로 안내했다.


아스테

“만찬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가시지요, 에르시온의 왕이시여.”


워드루프

“감사합니다. 

아스테 여기로 오니 제가 하나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이 신성한 곳을 앞으로 서로 만남을 위한 장소로 삼는게 어떻겠습니까?”


아스테는 위엄있게 이야기했다.


아스테

“우리 가이아는 여기서 1년에 한번씩 신성한 집회를 갖습니다.

 신성한 혜성이 오기를 기리는 것이지요. 

그 혜성이 오는 날은 이 세상에 무언가 중대한 변화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워드루프

“오, 그거 재밌는 이야기군요. 그 혜성은 언제쯤 다시 신지구로 오지요?”


아스테

“우리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분명한 건, 그 혜성이 당신들의 도착을 미리 예견했다는 것 이지요. 

나는 그게 길조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워드루프

“하하, 고맙습니다.”


 워드루프 왕은 웃으면서 공감을 표했다. 이윽고 두 정상은 양국이 품고 있던 미래가 불확실한 문제들을 이야기 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바로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협상은 생각보다 잘 마무리 되었다. 가이아의 아스테는 이니티움 평야를 에르시온 사람들에게 양도하기로 결정했고, 에르시온의 왕은 평화를 약속하고 가이아인들을 위해 발전된 과학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가이아와 이니티움 조약을 체결하면서 에르시온 왕국은 안정을 보장받게 되었다. 바햐흐로 에르시온의 황금기가 도래하고 있었다. 과거 각 가문의 모함이었던  도시들을 중심으로 인구는 급증하고 사람들은 스스로 살 곳을 찾아 자유로워졌으며 어느 누구도 불행하거나 억압받는 사람은 없는 풍요로운 시대가 워드루프 왕의 치세에 펼쳐졌다. 젊은 시절 워드루프의 꿈은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이 황금기의 상징은 바로 아크 더 베르니아(봄의 정원) 이었다. 조약 이후 에르시온을 방문한 가이아의 사절단이 과거 플랜트였던 에르시온 수도에 신지구의 아름다운 식물들을 심어준 게 기원이었다. 가이아 사절단의 노력으로 플랜트는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났고, 특히나 봄이 되면 여러 빛깔이 반짝이는 꽃들이 피어나 누구나 감동케하는 모습을 연출해 냈다. 이에 워드루프 왕은 가이아의 언어에서 봄의 정원을 뜻하는 아크더 베르니아를 수도의 이름으로 정했다.

 이렇듯 에르시온의 전성기는 가이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터, 수십년 후 불행의 씨앗 또한 여기서 부터 비롯되었다. 왕가로부터 개척권을 인정받은 코인 트러스트 가문들이 그 주역이었다. 왕으로 부터 특권을 인정받은 그들은 점점 이 세상이 제공할 부에 취해 탐욕에 빠졌다. 신지구에 널리 퍼져 있는 미스트롤리움이 그 대상이었다. 그들은 미스트롤리움으로 가동하는 핵융합로를 온 도시에 보급하였고 미스트롤리움의 수요는 점점 급증해 에르시온 영토내의 미스트롤리움 광산만으로는 수요가 부족한 지경에 달했다.

 이에 코인 트러스트 가문은 왕국의 남쪽인 가이의 국경 너머까지 침범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가이아인들과 마찰이 빈번해졌고, 이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지키고자 워드루프 와의 에르시온 선언을 왜곡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논리는 이런 식이었다. ‘가이아인들은 생존을 위해 위대한 선조들의 가치를 버린 자들이다. 그들은 진화 실험으로 탄생한 변종일 뿐 자비는 무가치하며 과거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켜 지구의 지배자가 된 만큼 멸족시켜야 마땅하다.’

 이들 때문에 에르시온과 가이아의 관계는 점점 악화일로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미연에 방지해야할 워드루프 왕은 점점 딜레마에 빠졌다. 에르시온이 한참 누리는 전성기가 그에게 코인 트러스트를 제재해 혼란을 야기하는 것을 두렵게 만들었다. 결국 가이아와의 평화와 왕국의 번영 중 그는 왕국의 번영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노인 된 탓일까. 예날만큼의 총명함을 잃어버린 워드루프 왕은 코인 트러스트를 방관하는 수밖에 없었고, 이는 결국 신지구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워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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